장돌뱅이의 삶을 자연에 비유해 운명론적으로 노래한 신경림()의 시


저자 : 신경림

발표년도 : 1976년 <엘레강스>


1976년 여성지 《엘레강스》에 발표된 작품이다. 원래 1974년 발표되었던 작품에 민요조의 전통가락을 반영시켜 개작해 다시 발표한 것으로, 신경림의 제2시집 《새재》(1979)에 수록되어 있다. 떠돌이 장사꾼들의 삶의 공간인 목계를 배경으로 민중들의 애환어린 삶과 강한 생명력을 토속적인 언어를 통해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전16행 단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내재율을 지니고 있다. 장돌뱅이의 삶을 시의 제재로 삼아 민중의 애환을 차분한 독백조의 어조에 실어 상징적·감각적인 심상으로 노래한 향토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표현상의 특징은 1인칭 화자의 독백체를 사용한 점과 민요적 가락을 연상시키는 4음보를 주된 율격으로 하면서 ,하고, 하네, 라네 등의 어미를 효과적으로 반복 사용해 생동감 있는 시상을 전개한 점을 들 수 있다. 또 시 전편을 통해 이 시의 주제의식을 이루는 구름, 잔바람, 방물장수로 표상되는 유랑의 이미지와 들꽃과 잔돌로 표상된 정착의 이미지를 교체시켜 표현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시의 도입부를 변주, 반복함으로써 주제를 강조한 점을 들 수 있다.

목계장터라는 생활공간을 배경으로 표면상 1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진술되는 이 시는 의미상 5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4행에서는 시적 화자의 독백을 통해 떠돌이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민중의 유랑의식을 이야기한다. 제5~7행에서는 목계장터에서 박가분을 파는 방물장수의 비애를 노래한다.

제8~11행에서 시적 화자는 나약한 민초의 삶을 이야기한다. 제12~14행에서는 시적 화자의 독백을 통해 고달프고 궁핍한 민중의 삶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제15~16행에서 시적 화자는 바람과 잔돌의 심상을 통해 운명적인 방랑의식과 정착의 존재성을 상징적으로 제시하며 시상을 마무리한다.

이 시는 가난한 민중의 아픔과 서러움을 자연에 비유해 운명론적으로 노래하면서도 민요적 가락에 의탁해 음악성이 뛰어난 독특한 민중시이자 서정시로 평가된다. 특히 구름과 바람 등으로 표상되는 유랑의 이미지와 들꽃과 잔돌 등으로 표상되는 정착의 이미지를 통한 대조적 표현은 방랑과 정착의 기로에 서 있는 농촌공동체의 시대적 삶과 화자의 개인적 삶 사이의 갈등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효과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신경림은 농촌소재의 시에 민요적 가락을 도입해 민중의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농촌소재의 시를 서정성 높은 민중시로 자리매김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목계장터/신경림

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